원문: 중앙일보. 

[책과 지식] 건축이 뇌과학에 묻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059393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된다”고 한다. 이 얘기는 누구나 쉽게 수긍할 만한 상식 같지만 오늘날 보편적인 병실 환경을 떠올려보면 우리 현실은 그 상식과는 꽤 멀게 느껴진다. 병원의 최우선의 가치는 환자의 치유다. 역사적으로 병원의 공간구조는 새로운 치료법이 고안되고 과학적 가설이 증명될 때마다 의료기술의 발달에 긴밀하게 대응하며 진화해왔다. 그 결과 현대의 병원 공간은 각종 최첨단 기구로 가득 차고 세분화된 처치실과 병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됐다.


 병실 창밖 자연풍경의 치유효과는 1984년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 박사가 과학적으로 증명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바 있다. 창밖에 자연풍경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다른 병실의 환자들보다 일찍 치유돼 퇴원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병원의 건축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건축가의 직관이나 사회적 통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로서 말이다.


 건축공간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는 건축가 본연의 직무지만, 과학적 측정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환경심리학이 대두한 후부터다. 그리고 최근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맞물려 뇌의 활동을 중심으로 건축공간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건축학이라고 한다.


 이 책(원제 Healing Spaces)의 저자인 정신의학자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는 2003년 여러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건축가와 함께 미국 신경건축학회(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를 창립했다. 본문의 곳곳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 학회의 탄생 과정과 참여 연구자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신경건축학이라는 아직 생소한 학문의 태동을 현장에서 보여주듯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만큼 유구한 건축학과 마음속 같이 어려운 신경과학의 조우는 다소 느슨하고도 엉뚱한 인연으로 시작한다. 17세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은 해부학자 토마스 윌리스와 함께 근대 의학의 큰 획을 그었던 해부학 도감 『뇌의 해부』에 삽화를 그렸다.


 그들의 협업은 단지 재미있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건축가는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상 속의 공간을 자르고 회전시키며 건물의 평면도와 단면도를 그린다. 해부학자는 몸 안의 공간을 자르고 관찰해 도식화 한다. 건물과 몸의 도면에 표현하는 것은 벽·지붕·세포·혈관 등의 물질적 요소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비물질적 현상, 바로 공간과 생명이다. 그들 관심의 교점이 뇌라는 것은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은 미국 라호야 소재 솔크연구소(Salk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면역학자인 조너스 솔크와 건축가 루이스 칸의 만남이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연구에 매진하던 솔크 박사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안고 이탈리아 아시시로 안식년을 떠났다. 이곳에서 머물며 받았던 영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솔크 박사는 그 장소의 힘을 믿었고 추후 연구소를 설립하며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그때의 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해 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1965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하는 생명과학의 메카로 자리 잡았고, 칸의 역작은 전세계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근대건축의 순례지가 됐다.


 이 책은 치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공간과 연결해보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저자의 통찰력 있는 화법은 건강과 행복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관통하며, 건축 그리고 공간을 다루는 새로운 태도와 가치를 일깨워준다. 독자는 건축학·뇌과학·생물학·심리학·의학·종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를 넘나들며 뇌와 마음과 공간의 연결선을 그리게 된다. 또한 현재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생동감 넘치는 고민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2010년에 신경건축학연구회가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뇌과학·심리학·인지과학·인간공학·건축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과 건축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풀 수 있는 연구 문제를 활발하게 모색 중이다. 행복에 대한 과학적 근거만으로 행복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갈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건축가와 과학자의 협업이 풍부하게 이뤄지는 곳,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흥미로우며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되는 곳, 그 곳이 바로 행복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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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띵.

“교수님,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을 말하는 지 궁금해요~! 안 바쁘시면 답장주세요 ㅜ ”

방학 한 복판 1월 18일 밤 9시 39분 도착한 문자 메시지.
지난 학기 1학년 스튜디오 수업에서 유난히 고민이 진지했던 학생 K가 보내온 것이다. 설령 선생님이 안 바쁘더라도 엄지로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마 알고 있지만, 정말 정말 궁금해서 망설이다 질문했을 거야. 라고. K의 얼굴을 한번 떠올리며 마음을 먹는다. 이 아이의 방학 중 스트레스가 나름 느껴져서 살짝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고,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회자되기 시작하니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스펙”처럼 그곳에 이르는 법을 묻는 태도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기에, 사회 구조적 문제를 마주하며 당장 내 손으로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무력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일단 이렇게 답했다.

“많이 놀아”

메시지를 보내며 넘겨보니 그동안 K가 보내왔던 질문 쓰레드가 죽 이어져 있다. “22도 경사에 계단을 안 넣어도 되나요?” “ 5mm 말고 3mm 우드락으로 만들어도 되나요?” “스케일 바꿔도 되나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모드 전환 중인 1학년 학생들과 스튜디오 수업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 ~이렇게 해도 되나요?”이다. 여태껏 명확한 절대 정답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살던 학생들에게 가장 큰 방황을 안기게 하는 것은 정답이 여러 개 일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 게다가 선생님도 그 정답을 등 뒤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즉, 문제만 존재하고 답은 각자 찾는다는 사실이다. 창작의 기본 전제. 아직은 그들에게 생소한 개념이다. 선생님은 문제를 던져 주고 함께 고민을 해줄 뿐, 결정은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학이라는 제도권 교육에서 학생들이 하나하나 배우고 평가 받아야 할 능력과 소양은 몹시 빽빽하다.  건축학교육인증을 받는 5년제 건축학전공에서는 무려 37항목에 달하는 수행평가항목을 학생들이 빠짐없이 성취하도록  요구한다. 창작을 목표하는 설계 스튜디오에서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학기의 여정 끝에 탄생한 결과물 실체를 바탕으로 그 과정을 평가한다.  “평가의 압박”보다는 충분히 익히고 사유하고 단련할 겨를, 그리고 그 기쁨에 충분히 빠져 들 수 있는 기회가 우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학기말, 1학년 학생 L이 과제 마감을 일주일 남겨 두고 계획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해왔던 과정에서 치명적으로 풀리지 않는 부분을 조목 조목 설명을 한 후,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내용을 조심스레 주장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도와주세요”

절실한 눈빛을 보냈다.

아마도 “그렇게 해도 되나요?” 라고 물었다면, 단호하게 “아니, 안돼.” 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깊은 고민 끝에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성숙하게 도움을 청하는 태도에서 명확한 책임감과 열의가 느껴졌다. 창작을 위한 기본 소양을 비로소 성취한 것이다. L은 마지막 일주일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업을 했지만, 절대적 시간 부족으로 최종 결과는 완성도가 높지 못했고 따라서 성적은 그에 상응하게 나갔다. 그러나 나는 L이 제도적 평가에서는 실패했을지라도, 본인의 결정에 만족했음을 보았고, 그의 성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과연 창작이 교육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특정 직능을 익히기 위한 기술 실습 이상의 범주로 나아가려면 본질적인 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실패하고 헤매고 망할 수 있는 여지를 그리고 그로 인해 스스로 깨닫는 교훈을 엮어갈 수 있는 틈. 실패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

시도와 실패를 아예 전면적인 교육 목표로 삼았던 지난 학기 2학년 수업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심한 마음 고생을 했었다. 시도가 목표인 수업이라니. 많이 실패할 수록 좋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끝없는 수도의 과정과도 비슷하게 되었다. 실패를 감내할 면역체계가 약한 것도 그렇고, “만족”조차 순전히 혼자 판단해야 할 부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수업을 마치고 유난히 수업 소감에 대한 장문의 이메일을 많이 받았었다. 그중 복학 첫 학기의 빳빳한 의지를 불태우며 학생 C가 지신의 블로그에 남긴 재치있는 회고담이 참 인상 깊다. [LINK]


지난 2년 간, 대학 1, 2학년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다 보니, 그들의 학습된 조바심 뒤에 펼쳐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였다. 정답과 정답의 연결 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동안 많이 노는 것. 그 정도의 여유. 크고 작은 실패로 단련되는 맷집. 그 교훈을 딛고 서는 성장.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오늘날 청춘들에게 권할 때, “내가 너만했을 땐 그랬다”는 투의 무책임한 언사처럼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 대체 나는, 우리 교육은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 걸까?



원문: http://janchi.in/?p=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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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현장.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현장이란,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관점에서 교육과 학습의 현장을 말한다. 교육자와 학습자로 대별되는 두 역할을 교사와 학생으로 각각 대입하고나면, 현장의 범위는 학교가 위치한 그 공간과 수업이 일어나고 있는 그 시간만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교육자와 학습자의 역할을 유연하게 부여하면 학교라는 현장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와 시간을 넘어 교육자와 학습자간의 교감과 관계로 확장된다.




체험, 삶의 현장.


도시환경을 물리적 실체로 구성하는 훈련을 받고 있는 조경, 도시, 건축 전공의 학생들에게 도시란 그 자체가 교육의 현장이자, 미래 전문가으로서 활동 영역이다. 2012년 International Workshop on Urban Landscape(IWUL)에서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세 나라, 미국, 태국, 한국의 학교에서 조경학과를 중심으로 조경, 건축, 도시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여 서로에게 배우고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현장을 형성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이 위치한 콜럼버스시가 당면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문제와 도시 텃밭의 문제를 중첩하고 여기에 다양한 참여자들의 경계를 그려넣으니, 거기엔 인류 보편적인 삶에 대한 고민, 지역적 차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구축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지역 주민과 이야기하고, 시장 상인과 거래를 하고, 건축자재를 주문하고, 직접 땅을 파고, 나무 뿌리를 정리하고, 구조물을 세우고, 그러면서 어느새 동료가 된 모두는 서로가 속해있는 현장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태국 출라룽콘 대학의 한 학생은, 조심스레 되묻는다. 정말 여기엔 이렇게까지 넓은 커뮤니티 가든이 필요한걸까? 인공환경이 아니어도 농경재배에 최적 기후와 세계최상위권의 인구밀도를 보유한 방콕의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한 조경학과 학생이 건축학과 학생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다가 묻는다. 왜 너의 사진에는 건물만 있고 사람은 없는거야? 같은 곳에 있어도 관심과 관점이 다름을 느끼며, 신기한 듯 서로의 사진을 비교한다. 



다시, 현장이 되는 학교.


잠시 색다른 삶의 현장에서 돌아온 학생들과 교수들은 이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보고 만들고 느낀 것, 새로 맺은 관계와 공감했던 문제들은 출판과 전문가들과의 워크샵을 통해 다시 새로운 지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학생들은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학습자로서 실천자로서 전문가로서 그리고 새로운 체험을 나누고 체득한 지식을 유통하는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IWUL의 경험이 진화하는 학교의 현장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하며, 여기에 그들의 풍경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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